
제 목 | 나도 가출하고 싶다 | |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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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 성 자 | 조병근 | ||
등록일자 | 2018-07-18 22:34:08 | |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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괜히 마음이 급해집니다. 차에 내려 미술관까지 100여 미터를 걷는데도 등줄기가 축축해 옵니다. 대구답다는 생각이 계속 나를 따라 다닙니다. 곧바로 2층 김환기 전시실을 찾았습니다. 1970년 작, 전면 점화 [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]를 마주 보고 섰습니다. 등 뒤로는 1972년 작, 환기블루의 전면 점화가, 오른쪽에는 1973년 작, 흰 곡선이 있는 전면 점화가, 왼쪽에는 1974년 그의 마지막 작품인 [듀엣]이 걸렸습니다. 무한히 반복하여 찍어간 점들과 면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마치 한지에 먹물을 떨어뜨린 것 같이 색 번짐이 눈에 들어옵니다. 유화이면서도 매우 한국적인 느낌을 살리려 애쓴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. 얼핏 보면 그 수많은 점들은 하나 같이 모두 똑같은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같은 점은 하나도 없습니다. 색의 묽고 진한 정도는 물론 색 번짐의 미묘한 차이까지 다 다릅니다. 마치 수십억 인간 모습이 같은 듯하지만 다 다르듯이, 밤하늘 별들 모습이 같은 듯하지만 다 다르듯이 어느 것 하나 같은 점이 없습니다. 이렇게 점 하나하나에 각기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. 사방의 점화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작가의 예술적 에너지가 내 머리 위로 확 쏟아져 나를 압도하는 듯합니다. 전면 점화에 이르기까지 환기는 얼마나 많은 심적 고통을 겪어야 했을까? 불현듯 그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.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신화 속 영웅들 일생은 일정한 패턴이 있다고 했습니다. 그 과정 중 하나가 바로 가출입니다. 집 떠난다는 것은 안락함과 타성에서 벗어나 스스로 고난과 시련을 찾아 나선다는 의미입니다. 이 고난과 시련의 과정을 슬기롭게 이겨낼 때 영웅이 탄생한다는 겁니다. 그러고 보면 결정적인 순간 환기는 일본으로, 파리로, 뉴욕으로 가졌던 것 모두를 버리고 고난의 길을 찾아 훌훌 떠났으며 늘 새로운 것으로 채워 다시 우리들 앞에 섰던 겁니다. 그렇게 해서 환기는 우리 미술계의 신화가 되었습니다. 오늘도 미술관에서 얻은 신의 한 수 마음에 새기며 기분 좋게 돌아갑니다. 가진 것 비울 때 새것으로 채울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. 사족 마누라에게 말했다. 나도 가출하고 싶다. 그 결과..... 마음대로 상상 금물. 직접 말씀해보시라. |